어머니, 노화로 인하여 편찮으신 증세가 몸 여기저기서 하나 둘 씩 나타나고 있는 와중,

동네 의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의사소견으로 폐결절이 있으니 전문의 진단이 필요하단다.

1차 의료기관과 2차3차의료기관의 짝짜궁이가 의심되는 경우도 많아 영상을 봐도 신뢰가 가지 않지만 확인은 해야했다.

의료진단의 의심 계기는 폭증했던 갑상선암 진단과 수술 통계인데, 이 수치의 불순함은 이제 의심할 나위가 없이 권위 있는 의사들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핸들을 틀어, 병원이나 의원 규모에 상관없이 늘 당연한 듯 대기시간이 길고, 서 너 번의 병원 방문 중에 그 막간을 이용하여 [노인과 바다]를 읽었다.

이 작품에는 인간이란 존재의 특성이 적.확.하게 묘사되어 있다.

인간은 객관적 존재로서는 한낱 미물이며 동시에 주체적으로는 위대한 생명체라는 점이다.

인간의 모순된 여러가지 특성에 대한 표현들이 경이롭게 어우러져 있어서, 

이 소설이 다소 마초적인데가 있을 지라도 좋은 작품이라는 것에 수긍이 된다.

 

'과연 인간들이 저고기를 먹을 만한 자격이 있을까. 아니야, 물론 자격이 없어. 저렇게도 당당하고, 위엄 있는 저 놈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야.'

"함께 놀고 장난치고, 샘 날 정도로 사랑도 하지. 저 녀석들은 날치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형제나 마찬가지야."

 

노인은 고독과 불안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현실을 인정하며,

자신 외의 나머지 자연에 대하여 경외와 동시에 극복의 의지를 내비치며 갈등한다.

갈등은 풀렸다 묶였다를 반복하며 노인을 힘들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지는 아름답게 결정화되어 간다.

작품에서는 자연도 노인도 모두 숭고함 그 자체이다.

자연은 존재 자체로 숭고하며, 노인의 경우는 갈등 속에서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어하여 불안 속에서도 침착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생명체라는 유한의 존재는 불안과 공포 앞에서는 초연하기가 매우 어렵다.

불안과 고독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대상(바다 속의 커다란 어떤 고기)에 대한 분석을 침착하게 할 수 있는

노인의 초연함을 뒷받침하는 것은 평생 어부로 살아온 노련함이었겠다.

그럼에도 노인이 처한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열악하여 침착하고 초연하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빈약하고 불균형한 영양 섭취, 상처와 피로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도 고기와의 사투를 빨리 끝내려고 조바심내지 않고 인내한다.

싸움을 빨리 끝내고픈 성급한 마음에 고기를 험하고 가혹하게 다루면 엄청난 힘의 고기가 격렬하게 반응하여 노인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때를 기다리며 인내해야 하는 상황임을 노인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

이 장면은 우리 인간들이 탐욕의 성취나 고통의 해결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자제해야하는 근원적 이유를 제시한다.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다뤄지지 않으며, 멋대로의 취급은 자신에게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노인의 갈등은 자신의 직업인 고기를 잡고 결과적으로 죽여야만 하는 것에 대한 성찰의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다른 포식자들처럼 주변의 것을 파괴하여 생명을 이어갈 수 뿐이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파괴행위를 정당하게 여겨 몰염치하기 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인 복합적 숙고의 과정을 신의 시험처럼 거쳐야 하며

그 결과, 자신이 파괴한 존재들을 경외하며 겸손한 답을 얻어야 천박한 생명체로 그치지 않고 노인처럼 홀로라도 존엄해질 수 있다. 

생각하고 철학을 할 줄 안다는 인간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지 않고 짐승으로 전락하지 않고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다.

 

[노인과 바다] 외에 ♣ 생태주의 작품 몇 개 ♣ 이면서 매우 좋아하는 작품들

 

마지막 유니콘 ; 미국 애니메이션 ; 밴드 아메리카의 the Last Unicorn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 거신병이 타노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 ; 독일 영화 ; 엠마는 착한 타노스?
청의 6호 ; 종말을 획책한 타노스 캐릭터의 박사 등장
환경전사 젠타포스 ; 못 봤으나 재미있어 할 것 같음 ㅡ,.ㅡ;;;

 

 

지난 6월에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이 그리워 진다. 

선생님은 급진적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셨다. 생태문제를 급진적으로라도 비판하는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전혀 지나치지 않다.

선생님은 종착지에 계시다시피한 상징이셨고, 우리는 종착지로 가는 길에 들어선 적도 없으면서 엄살과 원망을 했었다.

선생님의 철학은 목적이어서 고민하지 않으셨을 것 같고, 방법은 많이 고민하셨을 것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선생님의 철학을 목적이 아닌 방법으로 여겨서 비난 혹은 비판하였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2020. 11. 28. 주술호응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