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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

사회부적응자의 배설 2018. 1. 25. 01:08 posted by jenny-come-lately




학술적인 책이 심리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드문 경험


[혐오와 수치심]은 법에 의한 처벌과 제도에서 정상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의 과오에 대한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빈틈없는 오류를 지적하는 명석하고 힘 있으며 품위 있는 책이다.

최상위에 놓아야할 가치인 인간성에 대하여 철학, 심리학, 판례를 통해 정교하게 분석하였기 때문에 

머리와 가슴을 지닌 존재라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가치를 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흥미롭게 주목하게 된 개념을 추가적으로 꼽자면 ‘역량’과 ‘온정주의’, ‘도덕적 공황’이다. 


하나하나 곱씹으며 생각해봐야할 보석 같은 글로 채워져 있는 책이지만

마지막 챕터에서 요약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 몇 개의 문단을 다소 건조하더라도 옮겨 놓는 것이 

이 존경스러운 학자의 업적에 대한 나름대로의 경의를 표하는 노가다라고....


제대로 된 인문학 서적은 짧은 메모를 포함 1시간에 50페이지뿐이 속도가 나지 않으므로 읽는 데 이틀이나 걸렸는데

2 주전에 읽으려고 했던 책-휴머니즘의 선택이 실패했던 것을 아쉬워하던 차에 휴머니티의 이해를 통해 넘치게 보상 받아서 개운하다(책의 영어 제목이 Hiding from Huma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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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한편으로 지적이고 재간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약하고 취약하여 죽음 앞에 무력한 존재)에 대해 깊은 불안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다루기 곤란한 조건을 수치스러워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숨기려고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수치심과 우리의 동물성과 유한성의 징후에 대한 혐오를 키우고 가르친다. 혐오와 원초적 수치심은 인간의 발달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게다가 혐오는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역할을 하며, 원초적 수치심은 적어도 사람들이 높은 성취를 이룰 수 있게 자극하는 보다 생산적이고 어쩌면 건설적인 수치심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가지 감정은 개인적 삶과 개인이 구성하는 사회적 삶 모두에서 쉽사리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두 감정은 지배적인 집단이 다른 집단을 예속시키고 낙인찍는 사회적 행위 양식과 연결된다. 혐오의 경우,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행위자 자신의 두려움과 연관된 속성은 힘이 약한 집단을 대상화해서 투사되며, 이들 집단은 지배적인 집단이 자신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는 수단이 된다. 예속된 집단과 그 구성원들의 몸은 혐오스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예속된 집단의 구성원들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차별을 경험한다. 수치심의 경우, 무력감과 통제력의 결여가 불러일으키는 보다 일반적인 불안은 완전무결함(또는 유아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 완전함에 대한 환상의 회복)에 대한 추구로 이어진다. 지배 집단은 자신들이 지닌 안정적인 통제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위협한다고 여기는 하부 집단에 낙인을 안겨 줌으로써 통제하고 있다는 겉모습을 얻게 된다. 하부 집단은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사회적 불안의 초점이 되어서 낙인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단순히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낙인을 받을 수도 있다. 지배 집단은 ‘정상’이라는 편안함을 안겨 주는 허구를 통해 더욱더 효과적으로 [자신이 지닌 불안을] 숨길 수 있다.

  낙인을 안겨 주는 행위가 곳곳에 편재되어 있고 뿌리가 깊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개인을 동등하게 존중하고자 하는 사회에서는 혐오와 수치심이 법적 잣대로서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수치심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수치심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심과 부정적 형태의 수치심을 구분하기란 매우 어려우며, 긍정적인 수치심도 부정적인 형태로 바뀌는 경우가 자주 발견되기 때문에 처벌이나 법 제정 과정에서 수치심을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차별과 낙인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