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지식인

사회부적응자의 배설 2010. 2. 5. 10:36 posted by jenny-come-lately



1월 28일 하워드 진 타계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401607.html

앞에 "실천적"이라는 말을 붙여 지식인이라는 단어를 구분하는 것은, 수많은 지식인들이 존경받을만 하지 않다는 것,
그들이 지식인일지언정 지성인은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많지 않은 존경할 만한 지성인 중 하워드 진이 타계했다는 뒤늦게 알게 된 소식은 겨울 끝자락에 걸쳐 있는 내 마음을 춥게 했다.

하워드 진이 마음속에 남은 이유는, 그의 날카로우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신념때문이다.
구분하면 한쪽(善)에 같이 있는 것임에도 함께 어우러지기 어렵다고 느끼는 성질의 것이 있다.
정의와 온정, 이성과 연민, 자유와 저항등이 그렇다.
특히, 이성이란 것부터 인식하여 서양의 철학을 배운 한국의 지식인들은 저러한 복합적인 신념이 부족하고
끝에가서는 관용과 합리성도 어느 정도 부족하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하워드 진이나 리 호이나키 같은 지성인들에게 가치관을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인간 본성에 대해 성선설을 지지하는 듯 하다.
나의 경우는 경험상, 환경과 교육에 따라 달라지는 백지설에 무게를 둔다.
(이 문제는 유전학자들끼리도 논쟁하고 있는거 같은데 대세는 어떤 방향인지 모르겠다.)
하워드 진은 전쟁으로 점철된 역사는 인간의 본성보다는 지배 엘리트나 소수 권력자들의 탐욕이라고 보는데,
지배 엘리트나 소수 권력자가 되면 십중팔구는 그런 탐욕에 빠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성자 정도나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탐욕 또한 '자리'가 없어서일 뿐  일반적이라는 말이 되지 않겠나.
 
[오만한 제국]을 읽고나서 그의 책을 더 읽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미국 역사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의 올바름과  온기는 마음속에 인상깊게 남았다.

부고 소식은 캡콜드님의 블로그님에서 알게 되었다. http://capcold.net/blog/5477
"내"가 궁금해하는 세상 소식을 알고 싶을때 캡콜드님이나 이정환 기자님네 놀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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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퍼서 저작권때메 출처 생략.


"인생이 대 혼란에 빠져버릴 것이다."
만일 우리가 법에 대한 불복종을 허락한다면, 우리는 무정부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런 관념은 모든 나라 국민에게 주입되고 있다. '법과 질서'는 통상 쓰이는 경구이다.
이것이 모스크바든 시카고든, 시위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경찰과 군대를 투입하며 쓰는 바로 그 경구이다.
1970년 연방방위군이 자행한 켄트 주립대학 학생 4명의 살해 배경에도 이 경구가 있었다.
1989년 중국 정부가 베이징의 시위대 수백 명을 살해하면서 들이댄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jenny-come-lately - 2009년 1월 20일 용산 철거민 진압작전에서 주민 5명과 경찰 1명이 참사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 경구는 시민들이 정부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품고 있지 않는 한, 무질서를 우려하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진다.
1960년대에 한 하버드 법대생은 부모님들과 졸업생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 우리나라의 거리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소요를 일삼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완력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부터의 위험, 또 외부로부터의 위험. 우리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 없이 우리나라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긴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그 학생은 청중들에게 조용히 말해 주었다.
지금 말한 것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한 것입니다.

분명 평화와 안정과 질서는 소망스러운 것이며, 혼돈과 폭력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 생활에서 안정과 질서만이 유일하게 바람직한 조건은 아니다. 거기에는 또한 정의라는 것이 있다.
정의는 모든 인간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 자유와 번영에 대한 모든 사람의 동등한 권리를 의미한다.
법에의 절대적 복종은 일시적 질서를 가져올 수는 있으나, 정의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그리고 정의가 없을 때,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사람들은 저항하고 반항하며 무질서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 같은  저항이 18세기 미국 독립혁명가들이 한 일이며, 19세기 노예폐지론자들이 한 일이었다.
그리고 금세기 들어 중국 학생들이 한 일이며, 시대를 초월하여 파업을 일으켜온 전세계 노동자들이 해온 일이다.
우리는 법을 준수하는 것보다도 정의를 추구할 의무가 더 많은 것 아닐까?
법은 정의에 복무할 수 있다. 예컨대 법은 강간과 살인을 금지하고 있고,
인종이나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학생을 받아들이도록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법이 젊은이들을 전쟁에 내보내고 부자를 보호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처벌할 때, 법과 정의는 서로 배치된다.
그런 경우 우리에게 더 큰 의무는 어느쪽에 있는가 법인가, 정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