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어빙 고프만

사회부적응자의 배설 2019. 10. 22. 20:20 posted by jenny-come-lately

 

친여권 지지자나 평론가들 중 일부가 조국 전장관의 가족을 “가족 사기단”으로 치부하고 비난을 하는 현상이 이채롭게 여겨져 재작년에 사두었던 [스티그마]를 읽을 기회로 여기고 집어들었다. 조국장관 가족에 대한 비난은 두 가지 면에서 이채로웠는데, 하나는 사태의 초기에 즉, 매우 일찌감치 가족들에게 낙인을 찍었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과도한 수사와 엉터리 기사가 난무하여도 다른 가능성은 배제되고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낙인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였다. 

그러나 [스티그마]는 낙인이 ‘이미 이루어진’ 상황에서 피낙인자와 일반인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떠한지 설명하고 있었다. 낙인은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책에서는 그러한 낙인 중 “장애”인들이 주변과 소통하는 질적 사례를 자세히 고찰하였다. 피낙인자가 소수자로 대우나 취급을 받을 때, 주변의 사람이나 대중에게 낙인을 은폐할 때 및 공개할 때 피낙인자와 상대방(들) 사이에 연출되는 고유한 장면들이 소개되고 설명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들이 나에게는 그다지 새롭거나 낯설지 않았다. 고맥락적 동양사회인 한국에서 흔하고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상호작용과 그렇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서구사회가 개인주의적인 사회라면 한국은 집단주의 사회에 속하며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낙인과 같이 불명예스러운 것뿐만 아니라 그저 좀 ‘다르다’라는 것만으로도 상호작용의 흐름에 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며 이런 사례는 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스티그마]는 내가 궁금해 했던 현상을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낙인 이론’ 포스팅이나 정보를 잠깐 찾아보았다. 낙인은 취약한 소수자들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낙인을 찍는 주체의 어떤 ‘욕구’나 ‘감정’이 매우 강하게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낙인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전적으로 ‘선택성의 오류(선입관, 행동에 대한 다의적 해석의 가능성, 투사의 오류)’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제안되는 모양인데, 이 오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욕구나 감정이다. 지지자나 평론가들은 콤플렉스를 느꼈거나 실망으로 분노했다. 콤플렉스나 분노는 다른 정보들(언론의 기사들)의 비논리성과 불합리한 잔인성을 포착하지 못하였고 확증편향을 가져왔다. 이들이 자신들의 콤플렉스와 분노를 회복시키는 게 먼저일 수뿐이 없었던 점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통해, 확증편향은 자신에 대한 긍지가 높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치명적으로 위험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