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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08 삶의 방식
  2. 2008.09.17 인간 본성

삶의 방식

사회부적응자의 배설 2009. 3. 8. 22:19 posted by jenny-come-lately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까지는 우로보로스처럼 제자리.... 그래서 재방송일 따름.....

환경 운동가 제리 맨더가 The Sun지와의 대담에서 말한 주장은, 인간 삶의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지성인들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나는 이기심이 본능적이라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이기심이 인간본성의 한 부분이라고 보통 생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식에서만 그러할 뿐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지금 영위하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
 
나는 톱질을 하면서 음악을 듣는 것 만큼의 행복감을 느낀다.
집중하고 몰두하고 즐긴다.
그런 나에게는 아마도 욕구나 욕망은 있을지언정, 탐욕에 대한 심성은 생겨나지 않을것이다.
거기까지는 맨더의 말이 맞다.
그러나 누군가가 내가 다듬어 놓은 기둥이나 판, 톱이나 공구등을 가져갔다면 즉시 단번에,
나보다 더 그것들을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가져갔겠지 하며 계속 평안함과 여유로움을 유지할 수 있을까.

즉, "무엇이 발생했을때" 그 "무엇"이 무엇이든, 내 생각의 방식행동 유형문제 해결방법
그동안 내가 살아왔던 삶과 시간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게 될까.
오히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더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타적 인간의 출현]에 소개된 실험 결과라고 한다.

<이를테면 거저 받은 돈 1만원을 두 사람이 나누는 실험이 있다. 한 사람이 1만원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다른 사람은 그걸 받거나 거부할 수 있다.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단돈 100원이라도 받는 게 이익이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굳이 많이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실험 결과 많은 사람들이 4천~5천원을 나눠줬고 2천원 미만을 나눠주는 경우에는 거부당하기도 했다.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경제적 논리 못지않게 공평성이나 사회정의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호혜적 가치 판단은 어린아이보다 어른에게서 많이 나타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나타났다.>

이 실험이 "의미"가 있으려면 1만원의 액수는 적합하지 않다.
아마 한 사람의 1개월 급여 수준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더 변별력이 크고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1만원을 전부 주거나 6,7천원을 준 사람은 얼마나 될지 매우 궁금하다.
1만원이나 6,7천원을 받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 또한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오히려 이런 부분에 대한 결과가 더 의미를 얻을 만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내 생각엔, 이런 방식은 "인간 본성"에 대해 "의미 있는"실험 결과가 아니다.
오히려, 훈련받지 않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의 본성을 낮게 평가하는데 의미가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인간 본성은 믿거나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훈련을 받고 교육을 받고 경제적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 즉, 책에서 주장하는 사회정의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 방식을 계속 선택하며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또한, 자신들의 방식을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강요하며 확장하는데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은 잘 하지만, 현명한 선택은 잘 못하며, 더더구나
이타적이면서 동시에 현명한 선택은 더 잘 못한다.
지성인들은 바로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 역시 형편과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현실적인 해결 방안이 나오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세상은 바뀔까 아닐까, 혹시 바뀌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의 영향일까.

그래서 제자리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내 꼬리는 맛도 없구만....

인간 본성

사회부적응자의 배설 2008. 9. 17. 13:04 posted by jenny-come-lately



이시기(인간이 존재했던) 의 95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에는 (파괴적이고 잔인한 시대인)오늘날 '인간 본성' 탓으로 돌려지는 속성들 대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사실의 어떤 점때문에 일부의 사람들이 '희망'을 갖는지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
이 사실은 인간본성 자체가 '무엇인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단지 '변화'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 있다.
95퍼센트의 기간동안 인간을 지배했던 본성이 불과 5퍼센트의 그 짧은 기간동안에
이렇게나(그것이 속도든 양이든 형태든) 가공할만하게 변했다면
(그 변화를 변질이라 해야할지 진화라 해야할지...)
결국 '인간 본성'은 아무데도 소용이 닿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 본성'은, '희망의 근거'라는 목록이 있다면 그 항목만은 삭제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즉, 희망에서는 아예 '인간 본성'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 본성'은 역사 발전의 산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라는 말 역시 사실이라면, '역사'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토록이나 쉽게 변하는)'인간 본성'은 그 방법이나 수단이 될 수 없다, 자, 그럼 답은 무엇인가.
나는 그 답을 기대하며 어떤 책을 읽기 시작했다.